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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이 있다면 10개의 여행 스타일이 있다

10명이 있다면 10개의 여행 스타일이 있다

대만 여행을 준비하는 친구가 10분 단위로 설계된 나노 스케줄 표를 보여주었다. 

“와, 이걸 다 할 거야?” 

“그럼!”

꼭 가고 싶은 맛집까지도 동선을 따라 섬세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이 중에 하나라도 어그러지면 스트레스 안 받아?” 

“받지, 당연히. 그래도 미리 알아보고 내 취향에 맞게 계획 짜는 게 난 즐겁더라. 낯선 데서 덜 불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돌아다니다가는 오전 11시쯤 이미 하루 치 체력이 바닥나고 말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스케줄이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같이 안 떠난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좋은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있을 뿐. 다만 동행이 있다면, 서로 여행 스타일이 맞아야 더 즐거운 여행이 되긴 한다. 미리 짠 촘촘한 스케줄을 따라 하루를 쓰고 노곤한 피로 속에 잠드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만큼 부지런히 걷고 보고 먹어줄 동행이 필요하다. 반대로 느긋하게 쉬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어서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채근하지 않을 동행이 필요하겠지. 

한때 화제가 되었던 한국식 MBTI(짜장 vs 짬뽕, 부먹 vs 찍먹, 물냉 vs 비냉, 밀떡 vs 쌀떡, 참고로 내 경우는 짜찍비밀★)를 여행에 적용해본다면 대략 이렇지 않을까? 

이왕 가는 여행 꼼꼼히 정보를 찾고 동선을 짜는 ‘계획형

vs 여행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게 제맛이라 생각하는 ‘즉흥형’. 

일찍 일어나 조식 먹고 하루를 먼저 시작하는 ‘아침형

 vs 밤늦게까지 재밌게 놀고 늦잠 자는 ‘저녁형’. 

남는 건 사진뿐이므로 추억 남기기에 몰두하는 ‘사진형’ 

vs 잘 찍은 사진을 건지려고 애쓰기보다 눈앞의 풍경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경험형’. 

여행에서 먹는 즐거움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맛집형

 vs 먹는 것은 그럭저럭 중요하지 않은 ‘끼니형’

나 같은 경우 ‘즉저사맛’형에 가깝다. 아닌가, ‘즉저경끼’인가…. 물론 실제 여행엔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폭넓은 스펙트럼이 존재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하루에 한 가지만 하는 여행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여행의 역사를 쌓아오며 찾은 내 여행 스타일은 ‘하루에 한 가지만 하는 여행’이다. 떠나기 전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하는 정도의 준비성을 갖고 있고, 그 밖의 일정은 현지에서의 나에게 맡겨둔다. 틈틈이 여행지의 정보를 찾아보긴 하지만 계획을 짠다기보다 내가 가면 좋아할 곳과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곳을 파악해두는 정도다. 쇼핑을 좋아하지 않고 기념사진을 남기지도 않는 타입의 나는 사람들이 쇼핑과 기념사진을 위해 많이 찾는 곳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어딜 가면 가장 느긋한 마음(=이 맛에 여행하지! 싶은 상태)으로 머물게 될까’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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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 도착해서는 하루에 한 가지만 하는 계획을 세운다. 아무 할 일 없는 하루는 좀 허전하니까 '#1일1뿌듯' 정도로 나를 만족시킬 계획은 필요하다. 오늘은 해변에 나가봐야지. 오늘은 친구가 추천해준 식당에 가야지. 오늘은 숙소 해먹에 누워 책맥을 해야지. 그 정도의 느슨한 계획이 좋다. 나머지 시간들을 자유롭게 비워둘 수 있으므로. 아직 오지 않은 우연을 기다릴 수 있으므로. 

물론 그것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사실 여행지에서 새로운 곳을 많이 들르는 데 큰 욕심이 없고, 내 마음이 편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서울에서의 일상이 이미 촘촘한데, 여행을 하면서까지 촘촘한 시간을 살고 싶진 않았다. 내가 정한 스케줄에 스스로 쫓기는 기분을 느끼며 바삐 움직이는 것도 싫었다. 

그런 자신을 알아가면서 나에게 가장 편안한 여행을 준비해주는 가이드가 된 셈이다. 

이 1인 여행사는 오직 한 명의 고객, 나를 위해 움직인다. 

여행에서 본전을 뽑는다는 게 대체 뭘까? 

여행은 우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일상에서는 그러기가 어렵지만, 여행에서는 오롯이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구성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가 중요해지고, 그 방식이 각자의 여행 스타일을 만든다. 

가끔 여행지에서 너무 한가로운 나를 보고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본전은 뽑아야지’ 하며 걱정해주는(?) 여행자들도 있었다. 나로선 이왕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더욱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었다.

여행에서 ‘본전을 뽑는다’는 게 대체 뭘까? 뭐가 본전일까? 

여행에 얼마를 들였든, 어디를 가든, 진짜 본전이란 건 내가 만족하는 선을 말할 것이다. 그 만족도란 것은 결국 사바사. 내가 즐겁고 행복했던 여행이라면 그게 바로 본전을 찾은 여행이다. 그러니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 좋아할 필요도, 어떤 방식으로 여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만족은 오롯이 나의 것, 추억도 오롯이 나의 것. 

그래서인지 여행을 할수록, 여행이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이번 삶이 이미 출발해버린 한 편의 긴 여행이라면, 나는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 걸까? 일단 남들 가는 데를 다 가보는 여행과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스스로 찾아보는 여행.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추억을 남기는 여행과 한군데 머무르며 오래 기억할 추억을 만드는 여행. 내가 좋아하는 여행의 방식을 찾는 건,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행도 ‘남들처럼’ 하려는 사람은, 사는 것도 남들처럼 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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